카이스트 논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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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kills 댓글 0건 조회 5,284회 작성일 11-04-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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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이스트 학부생들의 잇다른 자살로 서남표식 개혁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살한 원인들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징벌적 수업료가 직간접적으로 학생들의 자살을 유도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 같습니다.



학점이 낮은 학생은 등록금을 내라는 취지인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연구중심대학에서는 공통적으로 시행하는 제도입니다. UNIST에서는 학기별 평점 B+(3.3/4.3) 이상이면 모든 학비가 면제되고 B-(2.7/4.3) 이상이면 반액이 면제됩니다. 즉, 평점이 C, D인 학생들은 학비를 전액 자비로 충당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장학금을 받기 위한 학점관리가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는 학생들이 생기고, 낮은 학점을 받은 경우 학점 정정기간에 여러 교수들을 찾아 다니거나 이메일을 통해서 학점은 올려달라는 일종의 '학점 구걸'을 하게 됩니다.

지난 학기 초 전공수업 첫 시간에 "Lobbyist for a scholarship"이 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기 말에 한 학생으로부터 B0를 A-로 변경해 달라는 이메일을 받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점을 높이려는 이유가 단지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점이 향후 진로(취업, 유학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줄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많더군요.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아래 내용을 설명하면서 학점과 장학금에 연연하지 말라고 합니다.



첫째, UNIST에서 학점을 부과하는 방식(절대평가/상대평가)은 교수 재량입니다.

따라서 교수에 따라서 학점을 후하게 주기도 하고 절대평가로 엄격하게 주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사실은 교수들도 학생들의 장학금 혜택기준을 잘 알기 때문에 어지간 하지 않아서는 C, D 학점을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수업에서 C를 맞는 학생은 결석이 학기 당 5회 이상이 되거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지 않았거나, 시험점수가 50점 이하인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정상적으로 성실하게 출석하고, 숙제도 잘 내고, '어느 정도 열심히 공부를 했구나'라고 판단되는 학생에는 절대 C/D 학점을 주지 않습니다.



둘째, 학점과 실제 전공지식/실력이 비례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대학생들의 80-90%는 A, B 학점을 받는다는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학점인플레 현상으로 인해서 학점이 높다고 공부를 잘한 학생이거나 똑똑한 학생이라고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학부 학점이 좋아서 대학원에 합격시켰더니 전공기초도 모르더라고 하소연 하는 교수들을 종종 봅니다. 영어성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학점도 좋고 토익점수도 높은 학생들도 막상 영어 인터뷰를 해보면 실제 영어실력은 한참 부족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렇다보니 저는 학점이 높은 학생을 보면 일반적으로 시험공부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정말 실력을 갖춘 학생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학점 높다고 과학자로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UNIST 학생들 상당수는 단순히 회사취직하기 보다는 계속 공부해서 연구소나 학계에 남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학점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전공기초지식이고, 대학원에 와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에 대한 열정, 도전정신, 끈기 등입니다. 학부에서의 '공부'와 대학원에서의 '연구'는 매우 다릅니다. 학부에서의 공부는 남들이 이미 다 밝힌 전공지식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암기하고 본인의 기초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이지만, 대학원에서의 연구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탐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는 본인이 어떤 세부전공을 했고 어떤 연구성과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과거 대학 1,2학년 때 조금 놀아서 학점이 낮은 것은 거의 앞으로의 진로에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물론 학부만 졸업하고 일반 기업체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학점이 어느 정도 중요하겠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넷째, UNIST에서 장학금을 못받더라도 학비충당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등록금 내기가 너무 힘든 학생들은 지도교수 혹은 전공교수와 상담을 하면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내 근로학생이 되거나 대학원 연구실에서 연구참여를 하면 보통 월 30만원 정도는 학비충당이 됩니다. 또 많은 학생들이 과외를 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대학원에 입학하면 학비와 생활비 100% 이상을 지도교수가 부담합니다(현재, 대부분의 국내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에서는 대학원생 학비를 전액 지원합니다). 만약 UNIST에서 학석박 약 10년을 공부하는 학생이 대학 1-2학년 때 성적이 낮아서 1000만원의 학비를 냈다고 가정하면, 10년 동안 학교에는 1000만원을 학비로 낸 셈이 되고, 1년에 100만원, 한달에 10만원 이하로 학교를 다니는 셈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UNIST 학생들은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볼 필요도 없고, 본인만 스스로 학업에 관심을 갖고 전공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고, 힘든 일이 있으면 교수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면 대학생활을 원만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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