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왜 바쁜가? 학생은 왜 졸업이 늦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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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kills 댓글 0건 조회 1,162회 작성일 20-03-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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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몇 주째 출장 없이 집과 연구실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출장이 없어서 너무 좋지만 그렇다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밀려드는 서면 평가와 화상 회의, 실시간 온라인 강의, 전화통화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때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요즘은 대학원생들이 코로나 때문에 연구실에 많이 나오지 않으면서 여유가 생겨서 인지, 논문 수정본을 집중적으로 제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널 논문심사 의뢰까지 포함하면 검토해야 할 논문이 항상 몇 편씩 쌓이고 있습니다. 주중주말 장소 불문하고 하루종일 노트북을 켜고 논문을 고쳐도 계속 고칠 논문이 들어옵니다. 학생이 작성한 논문을 한 번 검토하면 끝이 아니라, 국제 저널에 투고할 수준으로 만들려면 최소 3-4회 수정해야 합니다. 논문 한 편 당 최소 몇 달에서 1년 이상 걸리는 작업이라서 인내심과 끈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0여년 전에 포항공대 대학원에 다닐 때 몇몇 교수님 연구실은 밤 12시가 되도록 불이 켜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왜 저렇게 늦게 퇴근하실까? 학생들이 논문 다 쓰고 과제하는데 왜 일이 많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과의 모 교수님은 학생들이 쓴 논문 초안을 쌓아두기만 하고 몇 달이 지나야 검토의견을 주는데, 졸업이 급한 한 선배가 교수님 몰래 논문 투고했다가 난리가 났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왜 교수님들이 늦게 퇴근하고, 논문 검토도 밀리는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때 교수님들의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저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왜 퇴근을 늦게하고, 논문 검토가 밀리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우선, 학생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교수로서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교수가 강의하고 논문 쓰는 것을 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온갖 봉사활동과 행정업무를 수행합니다. 연구실이 어느정도 안정화 된 이후에는 10명 이상의 학생이 논문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 논문을 모두 검토하고 수정하는데 엄청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수준이 낮은 논문 초안(글쓰기 수준과 연구내용 차원에서)을 읽고 고치는 것은 너무 큰 스트레스입니다. 문법 오류가 많으면 간단히 고치거나 원어민 교정을 받으면 되는데, 논리 전개가 엉망이거나 다 아는 단어로 쓴 문장인데 해석이 안 되는 독창적인 문장은 영문 교정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런 논문은 아주 읽기 싫고, 검토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입니다.


UNIST에서는 박사 졸업요건으로 SCI 한 편을 요구하지만, 우리학부에서는 세 편을 요구합니다. 보통 박사학위 논문은 학술지 논문 다섯 편 분량이 되기 때문에 졸업 기준 세 편은 분량 차원에서 적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국제학술지 투고와 심사과정이 길기 때문에 박사 고년차에 몰아서 논문을 쓰면 제 때(석사 2년, 박사 4년)에 졸업하기 어렵습니다. 박사 고년차 학생들은 마음은 급하다고 하는데, 사실 마음보다는 몸이 급해야 합니다. 한국의 공대 박사과정 학생은 과제와 행정업무가 많아서 바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는 본인의 학위논문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마감일을 만들어서 논문을 써야 합니다. 석사 2년차부터 1년에 논문 한 편만 쓰면 박사졸업 요건 채우기는 쉽습니다. 논문 여러 편으로 지도교수를 압박하는 것이 졸업의 지름길입니다. 학생이 먼저 졸업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좋은 저널에 논문 몇 편 게재하면 지도교수가 먼저 “OO야, 이제 졸업할 때가 된 것 같구나, 내년 봄에 졸업하거라”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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