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은 학부생 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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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kills 댓글 0건 조회 14,793회 작성일 12-02-0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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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학부생(대학생)들이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는 신문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공계 학부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가서 연구참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UNIST에서도 졸업을 위해서는 무조건 연구참여 학점을 이수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는 학부 3-4학년들이 참여하는데 이와는 별개로 심지어 1-2학년 학생들도 연구실에 들어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단계"와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학부에서 배우고 익힐 것이 있고, 석사과정, 박사과정에서 배울 내용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요즘은 학부생에게 대학원생 역할까지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학부생에게 논문도 쓰게 합니다. 이것이 과연 학부생의 미래를 위한 일일까요? 아마 많은 경우, 학부생 본인의 성공에 대한 조급함과 지도교수의 연구실적 욕심이 빚어낸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학부생은 학부생 답게 전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쌓고, 여러 경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참여는 그 경험 중의 하나일뿐, 학과/동아리활동 등을 하지 않고 학부 2-3학년부터 연구실에 들어가서 거의 대학원생과 동일한 생활을 하는 것은 "찬란한 20대 초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연구실에 일찍 들어가면 그만큼 빨리 해당 세부전공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2년 빨리 시작하는 것은 평생 연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평생 과학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학부 때부터 연구참여를 하고 어떻게 해서든 대학원 졸업을 빨리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서 교수/연구원이 된 사람들은 거의 못 봤습니다. 저는 연구참여를 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이런 점을 충분히 설명 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학생이 연구실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연구참여를 허락합니다.



학부생이 영어로 논문을 써서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논문을 쓰고 학술지에 게재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학부생의 역할이 지도교수 대신에 실험만 하거나 기초 데이터만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1. 연구 주제: 최신 연구동향을 비롯해서 과거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연구경력이 필요합니다. 즉, 학부생 스스로 연구주제를 발굴하기 보다는 지도교수가 주제를 찾아서 던져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 실험: 대학원 선배들이 가르쳐주거나, 지도교수가 직접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실험은 학부생들이 직접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숙련도가 떨어집니다.

3. 논문 쓰기: 실험결과들을 이용해서 기본적인 그래프를 그리고 이를 토대로 어떤 의미인지 지도교수와 상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논문으로 쓸 정도의 결과라고 판단되면 논문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기 위한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학부생들이 혼자 제대로 논문 쓰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학부생이 혼자 논문을 썼더라도 거의 모든 부분을 교수가 새롭게 써야 합니다. 더구나 영어논문의 경우에는 왠만큼 훈련이 되지 않은 대학원생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논문은 지도교수가 다 쓰고 제 1저자의 크레딧을 실제로 실험을 한 학생에게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4. 학술지 투고 및 심사: 학술지 투고 후에 심사답변서를 써야 하는데 매우 까다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에도 지도교수가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학부생이 논문을 썼다고 기사가 나오는 것은 홍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당장에라도 연구참여생에게 시료분석을 맡기고 논문에 이름을 첫번째로 넣어주고 학부생이 논문 썼다고 홍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내용들은 석박사 통합과정에 대한 제 생각과 일맥상통합니다. 다음에는 이에 대해서 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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