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통합과정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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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kills 댓글 2건 조회 26,179회 작성일 12-02-1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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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석박통합과정은 90년대 중후반에 개설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면 석사과정 2년, 박사과정 4년 이상 공부해야 하므로, 군대에 다녀오게 되면 서른을 넘어서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석박통합과정으로 입학하면 석사학위 없이 바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2년 정도 학위기간이 단축되고 박사병역특례까지 하면 20대 중반에 박사학위를 받기도 합니다. 이렇다보니 박사학위를 빨리 받고 취업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제도입니다. 또한 이공계 대학원 입학전형에 상위권 학부생들의 지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국내 대학원으로 유인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석박통합과정은 학생 본인의 연구의지만 있다면 꾸준히 장기간 한 연구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즉, 연구에 정말 몰두하고 싶은 학생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저는 학생들에게 석박통합과정을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가 여러 모로 학생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석박통합과정에 입학했다고 졸업을 빨리시켜야 하는 의무가 없습니다. 졸업시기는 지도교수가 결정합니다. 석사과정 2년을 마치고 박사과정으로 입학하면 보통 4-5년 정도면 박사학위를 받게 되는데, 학생의 연구실적이 뛰어나다면 3년만에도 졸업할 수 있습니다. 즉, 대학원생활 6-7년 정도를 하면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런데 석박통합과정으로 입학했더라도 연구실적이 뛰어나지 않고 일반 석사/박사과정학생과 비슷한 능력이라면 굳이 이들보다 빨리 졸업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석박통합과정만 6-7년 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습니다.



둘째, 석사과정으로 입학하면 2년만에 해당실험실의 온갖 노하우를 습득하고는 취업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석박통합과정으로 입학하면 최소 5년 정도는 연구실에 있어야 하므로, 지도교수 입장에서는 1-2년 잘 가르치고 몇 년간 안정적인 연구인력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가 석박통합과정을 권유한다면, 이는 거의 100% 연구 잘하는 혹은 일 잘하는 학생을 오래오래 연구실에 두기 위함입니다.



셋째, 석박통합은 인생의 많은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합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입학하더라도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다른 길을 찾게 되는데, 이러한 기회를 박탈합니다. 물론 석박통합과정 중에도 본인이 원하면 석사학위만 받고 나갈 수도 있지만, 드문 경우입니다. 석사 2년 정도 공부하면 대학원 공부가 본인적성에 맞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적성에 맞지 않다면 기업체 등에 취업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해당 연구실 생활이 싫거나 세부전공이 맞지 않다면 다른 세부전공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대학 다른 지도교수를 택할 수도 있고, 타대학원에 박사진학하거나 아예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조기에 포기할까요? 여전히 국내박사 보다는 미국박사가 대우를 받는 상황이고, 유학 가기도 쉬운 세상인데 말이죠.



결국, 석박통합과정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좀 더 훌륭한 과학자로 키우기 위한 제도라기 보다는, 이공계 대학원 입학경쟁률 하락과 지원학생 수준저하 상황에서 학생들의 졸업시기 단축과 장학금 수혜에 대한 기대심리를 이용하여, 연구인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석박통합과정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박사학위를 빨리 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 하나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박사학위 1년, 2년 빨리 받는 것이 향후 30년 이상의 과학자의 길에 있어서 뭐가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꾸준히 연구해서 정말 부끄럽지 않은 박사학위를 받고 사회에서 본인 학력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교과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Global Ph.D. Fellowship (GPF)은 박사과정뿐만 아니라 석박통합과정 신입생들을 선발해서 연간 3천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GPF 등의 각종 외부 장학금을 받는 것은 학생 개인에게는 영광이고 이력서에 매우 중요한 항목으로 기재할 수 있습니다. 학교로서는 GPF 수혜학생수가 곧 대학원 연구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그렇다보니 각 대학에서는 가급적 상위권 학부생들에게 석박통합과정 입학을 권유하고 GPF 지원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GPF에 많이 선정되면 그만큼 학교와 지도교수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대부분의 국내 상위권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교비/국비로 지원하거나 지도교수의 연구과제에 있는 연구원 인건비로 지급하는데, GPF에 선정된 학생에게는 학교와 지도교수가 따로 장학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조만간 반 이상의 석사과정 신입생을 석박통합과정으로 받는 시기가 올 것 같습니다. 어떤 제도가 해당학생에게 좋을지 충분한 상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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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님의 댓글

JH 작성일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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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님의 댓글

ㅇㅇ 작성일

글쎄요 미국은 박사를 하려는 사람은 학사학위가지고 바로 박사과정들어가던데 그게 한국대학의 석박통합과정이랑 사실상 같지 않나요.